[언론보도]‘플라스틱 협약’ 체결, 더 크게 요구해야 [왜냐면]

2024-11-19

 “저게 다 어디로 갈까?” 매주 분리수거 날 아파트 공터에 쌓이는 쓰레기를 보면 절로 나오는 물음이다. 아파트 한 동에서 이 정도면, 서울이나 우리나라 전체에서는 얼마나 나올까? 분리수거한 쓰레기는 얼마나 재활용될까? 특히, 일회용으로 여겨 쉽게 버리는, 그러나 쉽게 없어지지 않는 플라스틱은 어떻게 될까?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플라스틱 사용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2019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4억6천만t이고, 2060년 12억3천만t으로 늘 것으로 예상한다. 생산량이 늘면 폐기량도 늘어난다. 플라스틱은 99% 석유로 만들어지며,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주기에서 온실가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 플라스틱 생산국이며 1인당 소비량은 주요 10개국 중 압도적 1위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생각보다 훨씬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추산에 따르면 9% 수준이다.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대부분 매립되거나 산과 들, 강과 바다로 간다. 자연으로 간 플라스틱은 그러나 쉽게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페트병, 비닐봉지, 스티로폼 등은 자연 분해에 500년 정도 걸린다. 플라스틱 역사가 100년 남짓하니, 그동안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아직 대부분 지구 어딘가에 남아 있다. 바다로 들어간 플라스틱은 잘게 부서져 해양 생물에 섭취, 축적되고 먹이사슬을 타고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당시 영국의 자본주의 농업을 ‘약탈 체제’로 규정했다. 농촌에서 생산한 곡식이 먼 거리를 이동해 도시에서 소비되면서 곡식에 들어 있는 질소, 인, 칼륨 등 토양의 필수 영양소가 농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로 도시를 오염시켰다. 땅에서 나온 영양소를 땅에 돌려줘야 하는 ‘반환의 법칙’을 어기고 ‘약탈’이 벌어졌다. 약탈 농업은 농촌과 도시의 물질 순환을 막아서 토양이 악화했다. 그래도 자본주의는 약탈을 멈추지 않았다. 영국은 토양 황폐화를 막으려고 유럽 대륙에서 전사자의 뼈를 긁어모았고, 페루에서 구아노(새 배설물)를 수입했다. 이후 화학비료가 개발됐지만, 비료 사용으로 토양만 더 나빠졌다.

마르크스는 농촌과 도시 사이에서 일어난 이 현상을 ‘신진대사의 균열’이라고 불렀다. 자본주의는 자연이 부과한 생산조건인 인간과 토지 사이의 신진대사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을 낸다는 것이다. 순환이 막히면 어떤 생물도 건강할 수 없다. 생명은 곧 순환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산업농이 생산한 곡물과 같이 석유화학산업이 생산한 플라스틱도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거대하게 쌓인 플라스틱이 세계 곳곳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에 균열을 일으킨다. 인간과 동물이 곡식을 흡수하고 배출하는 배설물 더미에는 미생물이 살지만,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는 어떤 생명도 없다. 그것은 철저한 단절과 죽음의 세계다.

기후처럼 플라스틱도 지구적 차원의 문제다. 2022년 3월 유엔 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결의안이 통과된 후 지금까지 정부 간 협상위원회가 4차례 열렸다. 그리고 11월25일~12월1일 부산에서 마지막으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가 열린다. 낮은 재활용률을 생각하면 플라스틱 대책은 생산량 감축, 오래오래 쓰기, 재활용 순이어야 한다. 하지만 협상 전망은 밝지 않다. 산유국과 석유업계는 생산 감축에 반대하며 재활용 증대를 주장한다. 한국 정부는 생산 감축을 주장하는 플라스틱 협약 우호국에 속해 있지만 태도가 모호하고 소극적이다.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 저감 정책을 중단하거나 포기한 지금 정부를 보면 매우 우려스럽다.

파리기후협약은 기후운동에 강한 추동력이 되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탓에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실행은 지지부진하다. 그래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플라스틱 협약이 중요하다. 쉽지 않겠지만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협약은 자본주의 체제 전환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최근 ‘트럼프’라는 악재가 생겼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파리협약 탈퇴를 예고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노력하지 않겠다는 정책은 플라스틱 생산에도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부담은 커졌지만 그럴수록 법적 구속력이 있는 플라스틱 협약 체결을 더 큰 목소리로 요구해야 한다.

마지막 협상 전날인 11월23일, 부산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행진’에서 그리고 자기 자리에서 함께 외치자. “플라스틱, 줄여야 산다.”

조현철 |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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